특허전쟁, 특허분쟁, 특허괴물, 요즘처럼 '특허'라는 용어가 각종 언론에서 대접 받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업체는 경쟁업체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경쟁업체들로부터 처음에는 그렇게 주목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쟁업체는 '지금 상품으로도 없어서 못 파는데 뜬금없이 저 상품은 왜?'라는 반응을 보인다. 남들이 많이 취급하는 상품이 검증된 것이므로 리스크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이른 바 센세이션을 일으키면, 경쟁업체들의 반응은 '어! 어! 저거 뭐지?' 하고 관망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충격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좀 시간이 걸린다. 경쟁업체들은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우리도 저거 해, 빨리 빨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선두주자로 인해 재편되어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 발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M&A를 나는 이렇게 진단했다. 그리고, 선두주자와 후발주자간의 특허전쟁이 시작된다. 선두주자가 시장에서의 우위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현상이다.
특허전쟁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상품의 시장에 선두주자가 특허라는 벽돌로 성(城)을 쌓는 것이고, 후발주자가 공성전(攻城戰)을 벌이는 모양새가 된다. 이는 최근 발생되고 있는 애플사와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수 기업간의 특허분쟁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특허로 쌓은 성이 얼마나 튼튼할까. 그 것은 그 성을 쌓은 나라가 어디냐에 따라 답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만약 선두주자가 한국에 특허로 성을 쌓았다면 공성전에서 성이 무너질 확률이 매우 높다.
한국에 쌓은 특허성(城)은 마치 그 벽돌의 자재가 스티로폴이고 겉에만 벽돌색으로 칠한 성이 되기 쉽다. 한국에서 특허무효심판을 통해 특허가 무효로 되는 비율이 60% 내지 70%에 이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특허무효심판은 특허분쟁시에 실시자가 특허권자를 상대로 제기되는 특허침해주장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이용된다. 이러한 특허무효심판에서 특허가 무효로 되는 비율이 60~70%에 이른다는 것은 특허청이 그 동안 부실권리를 양산해왔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받고 특허청의 심사관은 특허등록을 해주고, 적지 않은 비용을 받고 특허심판원의 심판관은 그 특허를 무효로 시킨다. 물론 특허무효심판은 특허침해주장을 받는 자의 방어수단으로서 꼭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심판의 결과에 있어서 무효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자칫 특허를 무시하는 경향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허를 받아도 무효로 될 수 있는 확률이 60~70%라는 인식을 한다면, 특허를 획득한 자나 그 특허발명을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실시하려는 자에게나 특허권은 독점 배타권을 갖는다라는 확고한 신뢰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승소하여 특허실시료를 얼마 받았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에서 특허권자라는 신분은 분쟁에 접어들면 소위 정당하지 못하게 축재한 부자처럼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특허권자는 사(邪)이고 특허침해자는 정(正)이 되기 쉽다. 이래가지고는 지식재산권 강국은 요원하다.
특허권자가 한국에서 특허 1건을 획득하기 위해서 소모하는 시간과 비용은 상당하다. 발명으로부터 특허등록까지 약 3년의 기간이 소요되고, 약 500만원 이상의 비용이 소모된다.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여 특허권을 획득한 권리자는 자기 특허권의 권리를 신뢰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오랜 심사 기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획득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제3자가 특허침해를 하면 당연히 특허침해중지를 요청하고, 계속 실시를 원하면 라이센싱을 권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3자는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다. 그러면 특허를 무효로 시킬 확률이 60~70%이다. 이래서는 특허권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은 특허를 불신하여 개발된 기술을 공개시키기를 꺼려하게 되고, 기술에 관한 비밀 유지를 위한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어, 결과적으로는 기술 개발 자체를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정부는 개발된 기술을 공개시켜 기술의 파급효과를 장려하여 국가 산업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도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 국민, 정부 나아가 국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작금의 이러한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몇가지 제도를 고치고 노력하여야 할 것이 있다.
첫째, 특허청 심사관의 특허심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특허심사가 특허출원을 한 발명에 대해서 특허결정 또는 특허거절결정을 결정하는 것이지만, 특허결정을 할 때에는 담당 심사관으로서의 자존심을 실어 결정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기술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선행기술조사를 의뢰하는 외부기관의 관리를 철저하게 하여야 한다.
둘째, 특허심사시 거절이유통지인 의견제출통지서를 통지할 때, 현재는 거절 판단에 직접 사용되는 인용발명 정보만을 게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직접 거절이유의 인용발명으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심사관이 심사에 참조했던 관련이 있는 선행기술을 모두 의견제출통지서에 게재하여 출원인이 참조하게 하고, 나아가 특허분쟁시 참조하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 특허심판 또는 소송에서 당해 특허의 심사관의 심사결과와 참조한 선행기술들을 우선적으로 존중하여야 한다. 이는 미국의 특허 유효성 추정제도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심판 또는 소송에서 심사관이 참조한 자료 및 유사자료로부터는 당해 특허가 유효하다는 추정을 해주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판 또는 소송에서 특허무효를 판단할 때, 심사관이 심사에 참조한 선행기술자료와 그 아류 자료들에 관한 심사관의 심사결과를 우선 참조하면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앞으로 특허권자가 정당한 권리 행사를 기꺼이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특허권자가 권리행사를 하면 그 특허는 무효 된다’라는 인식은 반드시 불식시켜야 한다.